말레이시아역사

오랑코레아 0 385

말레이시아에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한 시기는 신*구석기 중간 정도의 시기로 추정된다. 말레이시아반도 페락주의 코타 탐분에서 발견된 석기 시대 유물은 약 3만4,000년 이상 된 것으로 알려져 적어도 4만년 전부터 말레이시아 반도에 인류가 거주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사라왁주의 니아동굴에서 2만 5,000년 전의 호모사피엔스 두개골이 발견되어 현재의 말레이시아 원주민인 오랑 아슬리의 선조로 추정되고 있다.여기에 기원전 2,500년경 중국의 윈난 지역에서 이주해온 이민자들과 기타 이민자들의 정착이 이어져 AD100년경 끄다 지협에 최초의 무역국가의 형태가 생겨나면서 끄다와 사라왁 지역에 힌두교와 불교를 숭상하는 무역국가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1,100년경에 말레이 반도에 이슬람교가 전래됨으로서 지금의 국교로 정착되는 시발이되었다.  
14세기 말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온 빠라메스와라(Parameswara)는 1402년 말라카(Melaka)왕국을 건국하였고, 1405년 중국의 명나라 제독인 쳉호제독의 말라카방문을 시작으로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시작되었다. 1411년에는 말라카국왕이 직접 이슬람교로 개종하였고 국왕이 중국을 방문하는 해이기도했다. 15세기 말라카왕국은 아랍인, 중국인, 인도인들의 무역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유럽의 아시아진출에 매력적인 지역으로 부상되었다. 1511년 포르투갈에 침공으로 인해 말라카가 함락되면서 잔존세력들은 조호르(Johor) 지역으로 이동하여 훗날 조호의 술탄이 되었다. 17세기는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이 말레이반도를 두고 대립한 시기였고, 영국은 18세기 후반부터 말레이반도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1786년 영국은 페낭(Penang)을 점령한 후 그 당시 영국왕인 KING GEORGE의 이름을 따서 페낭의 수도를 조지타운(Georgetown)으로 명명하였다. 1819년에는 레플스(Sir Stamford Raffles)에 의해 싱가포르이 영국의 지배하에 무역항으로 시작하게되었다. 1824년 네덜란드는 말라카를 영국에 내어주는 대신 수마트라말레이반도 이남지역의 모든 영토를 통제하는 조약을 영국과 맺었다. 그러나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해안과 반도의 섬 지역만 통치했을 뿐이었지 말레이반도 내륙 지역에는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18세기초부터 영국의 지배하에 놓이게되면서 1840년 경부터 말레이 반도에 매장되어있는 주석광산의 채굴을 위해 많은 중국인 광부들이 말레이 반도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한편 영국은 1841년부터 사라와크도 통치하기 시작했다. 1840년 제임스 브룩(James Brooke)이 브루나이술탄을 도와 반란군을 무찌른 대가로 사라왁의 왕으로 봉헌된 것이었다. 1874년 영국은 페락(Perak)왕국과 빵꼬르(Pangkor)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에서 영국은 말레이 왕국의 술탄 상속에 대한 동의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 받았다. 이는 영국의 말레이시아에 대한 간접지배를 사실상 인정받은 사건이었다. 1888년 브루나이, 사라와크, 북보르네오가 영국 보호령으로 편입되었고, 20세기 초반에는 끄다, 끌란딴(Kelantan), 뜨렝가누(Trengganu) 등 북부 말레이시아로 그 영역을 확장하였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은 말레이시아를 점령했고, 이듬해 1월 31일 영국군은 싱가포르를 포기했으며 2월 15일 영국군은 일본군에게 항복했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말레이시아로 재진주한 영국은 1946년 싱가포르를 제외한 말레이시아 전역을 하나로 묶는 말라야연합(Malayan Union)안의 도입을 시도했다. 말라야연합이 술탄의 권력을 박탈하고, 화인과 인도인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말레이인들은 이에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결국 1948년 2월 1일 말라야연방(Federation of Malaya)이 결성되었다.

압둘라만(Tunku Abdul Rahman, 1903~1976)이 이끄는 UMNO는 1950년대에 들어 화인, 인도인 집단과 선거협약을 맺어 1954년 동맹당(Alliance Party)으로 확대되었다. 동맹당은 1974년 국민전선(Barisan Nasional)으로 확대 개편되었고, 현재까지 집권 여당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1955년 총선에서 동맹당은 총 52석 중 51석을 차지하여 독립 이후 주도 정당으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선거 결과를 배경으로 말레이시아의 독립과 헌법 제정에 관한 사항을 영국과 신속히 협상하였고, 1957년 8월 31일 드디어 독립하였다.

1961년부터 말레이시아 정부는 사바, 사라왁, 싱가포르, 브루나이를 말레이연방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책에 착수하였고, 1963년 브루나이를 제외하고 말레이시아연방을 수립하였다. 1965년 싱가포르는 연방에서 탈퇴하였다. 말레이시아 독립을 이끌었던 초대 수상인 라만수상이 초대 수상을 하면서 말레이시아연방을 이끌었고 1970년 2대 수상인 라작수상이 취임하면서 경제발전을 통한 인종 간 경제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한 신경제정책을 발표하였다. 1974년 지금의 여당연합체인 국민전선(Barisan National)이 출범하면서 중국과도 국교를 수립하였다. 1976년 라작수상 사망으로 후세인온 수상이 3대 수상으로 취임하였고 1981년 마하티르수상이 제4대 수상으로 취임하면서 동방정책(look east policy)를 표방하여 한국과 일본과의 협력이 눈에띠게 발전되었다. 

1997년 태국을 강타한 외환위기는 곧 말레이시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IMF의 구제금융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2003년 10월 마하티르는 압둘라 바다위(Abdullah Ahmad Badawi)에게 제5대총리직을 물려주며 22년간의 장기집권을 종결지었다. 현재는 2009년부터 집권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수상인 Dato' Sri Haji Mohd Najib은 말레이시아 6번째 수상이며 2대 수상이었던 Tun Haji Abdul Razak의 장남으로 임기는 2018년까지로 2018년 총선에서 연임할지를 선택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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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년 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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